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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딩이의 자동차 이야기
한 시대의 종말 - 카비전 폐간 본문
이번에 귀국한 동안에는 몇가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빅뉴스 이외에 개인적으로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소식은 월간 카비전의
폐간이었습니다.
예고되었던 것이 아니라 갑자기 결정된 일이어서 자동차생활/카비전의 스탭들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일이었습니다. 카비전은 창간 당시 국내에서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전문지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자동차생활, 모터매거진, 월간오토, 카마스터등의 잡지가 발간되고 있었지만
카비전의 경우 사진과 내용, 편집의 우수함은 물론 해외전문지와의 제휴를 통한 기사를 통해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요.
제가 자동차 저널리스트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도 카비전을 통해서였습니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자동차 디자인 공부를 위해 유학을 준비하던 사이 현대고등학교 후배들과
함께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자금을 구하기 위해 당시
자동차생활에 계시던
사실 공고도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내부적으로 보면 대단한 프로젝트였을지
몰라도 밖에서 보기엔 별다른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 일이었을겁니다.
결국 초기에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한선배는 저희 프로젝트를 기사화 하면서 회사와 논의하여
외부필자 원고료 형식으로 작은 액수나마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런데 작업 첫 달 동안
결국 작업 초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기획하여 어떤 방식으로 작업진행을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를 제가 노트에 끄적끄적 적어서 자동차생활에 가지고 갔었습니다.
제가 적은 내용을 쭉 읽어보신 한선배께서는 ‘야, 이거 잘 썼는데? 그럼 이렇게 하자.
규혁이 네가 글을 쓰고 그 원고료를 프로젝트 진행에 보태면 되잖아?’
결국 이렇게 해서 카비전에 1년간 로드스터 제작기가 실리면서 정기적으로 마감때 맞춰 글을
쓰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독자투고나 독자시승기로 자동차생활, 모터매거진
등에 제 글이 실린 적이 있지만 고정꼭지가 생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요.
그리고 그 이후 미국에 와서 97년부터 카비전에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로드스터 제작기 1년, 미국에서 송고 9년으로 총 10년이니 카비전 발행기간중 절반 이상 제
원고가 나갔던 셈이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원고로는 케이터햄 수퍼세븐 조립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모터트렌드, 탑기어 등의 해외 유명 전문지의 한국판과 맞서기에 카비전이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끌고 나가기 어려워졌겠죠.
카비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다시 살아나게 될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2009년 6월호가 적어도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마지막인 것은 분명하지요.
몇 년이 지난 뒤라도 다시 부활하여 토종 자동차 전문지로서의 위상을 지켜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