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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딩이의 자동차 이야기
제네시스 쿠페와 드리프트 본문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를 합병한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점기업이 되었습니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가격정책과 함께 경영진의 도덕성 문제,
귀족 노조의 이기적 행태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박혀버리기는
했어도 자동차 산업을 시작한 지 50년이 채 되지도 않아 지금 같은 지위에 오른 것은
분명히 대단한 성과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산업을 시작하여 자체 개발은
물론 대미수출까지 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국제 시장에 내놓을만한 스포츠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포츠카라는 세그먼트 자체가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들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죠.
우리나라 자동차 공장에서 나온 수많은 모델에서만 보더라도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는
차는 쌍용 칼리스타와 기아 엘란의 두 차종이 전부이며 스포츠카의 범주에 가까이
근접한 차로 스쿠프, 티뷰론, 투스카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어울림 모터스의 스피라도 있습니다만 아직 정식 시판되지 않은 관계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짙게 띄는 쿠페로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릴 차로 기대를 걸만하다고 봅니다.
사실 이제는 스포츠카의 본질에만 충실한 차들은 전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GT와 쿠페가 스포츠카의 영역을 많이 잠식했을 뿐만 아니라 차종과 성격이 다양화되면서
전통적인 구분방식에 딱 맞아떨어지는 차들보다는 복합성격을 띠는 차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죠. 이런 면에서 제네시스 쿠페는 한국형 스포츠카로 그 존재가치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네시스 세단보다 현대의 이미지에 더 큰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이 높다고 봅니다.
현대자동차가 국제시장에서 가지고 있는 한계 중 하나가 2등 브랜드라는 점이죠.
현대가 미국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당시 미국 시장의 수입차로서는 첫해 판매 신기록을 갱신할
만큼 큰 호응을 얻었으나 사실 그것은 엑셀의 상품성이 뛰어나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차들이 부가가치 높은 중형급으로 올라가면서 소형차 시장이 공백상태가 되었던 것과
함께 현대 엑셀의 경쟁차종이라면 품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스타바 유고가 그 비교대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미국시장에서 제일 저렴한 승용차였던 유고와 엑셀은 늘 비교대상이 되었고 미디어와
시장의 반응은 항상 엑셀의 승리였습니다. 그 덕분에 성공적으로 미국시장에 진출한 현대는
차의 품질이나 경쟁력 등의 내적 요인이 아니라 사장 상황이라는 외적인 요인 덕분에
미국시장에 안착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후속차종 투입과 품질향상이 뒤따르지 않아
결국은 이미지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게 되었습니다.
성능이나 품질보다는 저렴한 가격을 강조하던 현대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갔으며 코미디의 소재로 애용될 만큼 조롱거리로까지 전락하기도 했죠.
현대(Hyundai)는 "Hope You Understand Nothing's Driveable And Inexpensive"의
약자라는 농담까지 있었으니까요.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미지의 전환점은 98년 말부터 시행된 10년 10만 마일 파워트레인
워런티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익스탠디드 워런티라 하여 보증수리기간을 연장시키는
프로그램을 구입할 수 있는데 현대의 경우 IMF로 인해 발생한 환차익을 가지고 차량 가격을
낮추는 대신 보증수리를 연장한 전략을 택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동안 향상된 품질에 자신이 있기도 했겠지만 10년 10만 마일은 차량 전체가 아닌
파워트레인에만, 그것도 신차로 구입한 최초구매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으므로 현대가
지불해야 하는 보증수리비용은 생각만큼 큰 것도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평균적으로 차를 교체하는 연한을 대체로 4~5년으로 잡으므로 최초구매자가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를 다 챙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반면 현대의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크게 피력되어 판매와 이미지가 동반 상승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누렸습니다. 당시 이를 미친짓이라 여겼던 다른 업체들도 보증기간을
연장하여 미국 자동차 업계의 전반적인 보증수리 기간이 늘어났지요.
지금은 최초구매자가 아닌 중고차 구매자에게도 10만 마일 보증수리를 해주는
메이커들이 있습니다. 시간도 흘렀을 뿐더러 다른 업체들의 워런티도 좋아짐으로 인해
현재는 이러한 보증수리가 예전 같은 약발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죠.
10년 10만마일 워런티의 후속단계로 새로운 마케팅 전력이 필요한 시기에 등장한 것이
제네시스입니다. 제네시스 세단의 경우는 미국 미디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차종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지내는 미국 자동차 저널리스트들도 제네시스 시승 후
사석에서 상당한 호평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단순한 언론플레이로 치부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경제위기 때문에 판매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많은 미국 드라마에 PPL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전략을 펼치는 모습이죠. 고급 브랜드를 따로 런칭하지 않고
현대 판매망을 통해 팔리고 있는 것은 찬반양론이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제네시스가
현대자동차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포석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럭셔리카를 새로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제네시스를 구입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미
럭셔리카를 소유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제네시스를 구입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이는 차의 상품성이 좋다는 긍정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지만 차후에 문제가 될 소지도
있습니다. 현대의 딜러 서비스는 사실 그다지 좋은 평을 듣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인이 아닌 현대차 오너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차는 마음에 들지만 딜러
서비스가 기분 나빠서 다음 구매대상에서 현대는 제외시켰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아주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저도 모 국내 항공사에서 형편없는 고객서비스를 세 번 경험한 후 삼진아웃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마일리지가 조금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5년간 그 항공사는 단 한번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변이 없는 한 그 항공사를 다시 타게 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몇 명의 싸가지 없는 직원들 때문에 저에게는 그 항공사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나빠졌기 때문이죠.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의 상품성과 품질도 중요하지만 고객과 직접 마주쳐야 하는 세일즈맨과 서비스
요원들의 자세 또한 아주 중요하죠. 현대가 내수시장에서 욕먹는 이유 중 상당부분이
영업소나 서비스 센터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죠. 기존의 현대차 구매층에서는 다소 불성실한 딜러
서비스도 감내할 사람들이 많을지 모르지만 기존의 럭셔리 브랜드의 차를 소유하면서
고급차에 어울리는 딜러 서비스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네시스가 미국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그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제네시스 세단은 그렇다 치고 아직 미국시장에 정식 런칭되지 않은 제네시스 쿠페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높습니다. 저렴한 가격의 후륜구동 쿠페는 특히 드리프트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크게 어필합니다. 얼마 전 레드불 드리프팅 월드 챔피언쉽을 관전하러
갔는데 입구 근처에 전시된 RMR(Rhys Millen Racing) 제네시스 쿠페를 보았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SEMA 쇼에서 발표된 차였기 때문에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 차였죠.
RMR을 이끌고 있는 리스 밀란은 현재 폰티액 솔스티스로 드리프트 시리즈에 출전하고
있으나 내년에는 제네시스 쿠페로 출전하기 위해 현대측과 스폰서쉽을 논의중에
있다고 합니다.
리스 밀란은 드리프터이자 다양한 헐리웃 영화에 스턴트 드라이버로 참여한 유명인사죠.
그는 분노의 질주 도쿄 드리프트 편에서 메인 스턴트 드라이버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로드 밀란은 스쿠프로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에서 클래스 우승을 한 경력이
있으므로 가족 내력으로도 현대와 관련이 있지요.
게다가 이번 레드불 드리프트 챔피언쉽에서 리스 밀란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운전테크닉의 하나였던 드리프트를 모터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발전시킨 것은 일본입니다.
따라서 드리프트 팬들은 친 일본차 성향이 강하죠. D-1 그랑프리나 포뮬러 D에서만 보아도
많은 일본인 드리프터들이 일제차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스폰서는 미국 메이커들이 많이 하고 있죠. 지금의 위기 때문에 내년 시즌에는
어떻게 바뀔 지 모르겠지만 올해의 경우 GM은 폰티액 솔스티스(리스 밀란),
포드는 머스탱(켄 구시), 크라이슬러는 다지 바이퍼(새뮤얼 휴비넷)를 투입했습니다.
스피드 채널을 포함한 TV 중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홍보효과는 있겠지만 실제 드리프트
컴피티션을 관람하러 오는 관객들은 미국차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하더군요.
사회자가 “여기 닛산 팬들 계신가요?” 라고 했을 때 관중석에서의 호응은 엄청났던 반면
“그럼 포드 팬은요?” 라고 물었을 때는 우~ 하는 야유조의 반응까지 있었으니까요.
이런 반응은 폰티액이나 다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본 것이 전부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분위기는 그렇더군요.
과연 이들에게 현대는 어떨까요? 지금으로서는 사실 그닥 관심도 없는 브랜드일겁니다.
모르긴 해도 드리프트 이벤트에서 사회자가 현대에 대해 물었다면 아마 환호도 야유도
없는 썰렁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내년에는 현대가 탑 드리프터인 리스 밀란과 함께 제네시스 쿠페로 드리프트 컴피티션에
출전하면서 모터스포츠에도 새로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현대 자동차의 무덤덤한 이미지를 바꿔나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큰 이미지 상승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가 2등 브랜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로로든 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써는 가장 적합한 차종이 제네시스 쿠페이고 가장
적당한 종목이 드리프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