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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딩이의 자동차 이야기
90세를 맞이한 자동차 일러스트레이터 AF 본문
사람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갑니다.
연예인의 경우 공인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들이 대중에게 주는 영향이 일반인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선행이나 실수가 더 크게 부각되기도 합니다.
저도 부모님과 친지들을 비롯해 학창시절 선생님과 교수님, 많은 선후배들에게서 이런저런
영향을 받았고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쓴 기사를 보고
ACCD에 진학한 뒤 GM에 입사한 분도 계시고
꿈을 꾸고 있다는 고등학생과의 교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과 직접적인 교류를 갖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기만 할 때도 있지요.
소설 속 어느 대사가 좌우명처럼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거나, 어느 영화를 통해 크나큰
감동을 받은 사람이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일생을 결정할 만큼의 큰 영향은 아닐지 몰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큰 영향을 준
업계의 대부(?)가 누구나 하나쯤은 있겠죠. 직접 사사를 해준 직장의 사수도 있을 수 있고,
전공 교수님의 가르침 등 직접적인 인연도 있겠지만 한번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어도
연구업적이나 작품을 통해 큰 영향이나 감동을 준 분도 있을 테니까요.
제 경우도 당연히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의 한 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략 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카비전에 리처드 정의 디자인 에세이가 연재되었는데
그 중 한편에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의 폰티액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
적이 있었습니다. 해당 페이지에는 기사 내용에 언급된 그림이 작게 프린트되어 있었습니다.
지면에 작게 실린 그림이었지만 구도, 색채, 분위기 등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죠.
자동차 광고사의 한 획을 그은 이 일러스트레이션들에는 AF/VK 또는 VK/AF 라고 싸인이
되어있는데 한 사람이 자동차를, 다른 한 사람이 배경을 그렸다는 설명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년이 지났습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신기하던 무렵 포모나라는 동네에서 열린 자동차
스왑밋(Swapmeet)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3달에 두번 정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 벼룩시장은
중고차, 각종 자동차 부품, 튜닝용품과 애프터마켓, 차량 유지에 관련된 케미컬이나 첨가제는
물론 자동차 관련 서적을 파는 부스까지 다양한 좌판(?)이 펼쳐진 곳이었습니다.
물론 자동차와 상관없는 잡동사니를 파는 사람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차에 관련된 거의
전품목이 거래되는 곳이자 자동차 매니아에게는 상당히 많은 구경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곳이기도 하지요. 미국에 오기 전 우리나라의 대형 서점에 가 보아도 자동차서적 코너는
운전면허나 기사자격증 시험에 대비한 수험서이거나 정비매뉴얼이 대부분이었고 다른 소재라면
전국 지도나 맛집소개서 같이 자동차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경우였고 그 이외의 교양서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미국에서는 웬만한 서점에만 가 보아도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 관련
서적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벼룩시장에서는 일반 서점에서 구하지 못하는 절판된
책을 비롯해 오래된 카탈로그들까지 구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더군요.
다양한 차종의 예전 카탈로그를 이리저리 훑어보던 중 오래된 폰티액 브로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카비전에서 보았던 기사가 떠올라 냉큼 집어 들고 비닐주머니에서
빼서 펼쳐보았죠. 기사에서 보았던 대로 잘 찍은 사진보다 훨씬 호소력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구성된 폰티액 브로셔를 몇 개 열어보고 나서 1970년도 브로셔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물론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도 있겠지만 일러스트레이터나 디자이너 지망생들은 물론 현직에
계신 분들에게도 아주 좋은 참고자료가 될만한 그림이 가득했으니까요.
제 경우는 그림에 대한 고민과 연습에 이 브로셔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AF와 VK에게 직접 그림을 배우거나 강의를 들은 것도 아니었고 그들의 여러 작품을
보면서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느낌에 좌절감 느낄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동차라는 물체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들을 보면서 돌아갈 길 대신 지름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나서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매년 8월에는 클래식카 세계에서는 가장 큰 이벤트라 할 수 있는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가
열립니다.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는 일요일에만 열리는 이벤트이지만 이 한주간은
다양한 자동차 이벤트가 끊이지 않고 몬테레이 반도 여기저기서 열립니다.
마세라티 카쇼로 시작하여 이태리차 중심의 유럽차들의 카쇼로 발전한 콩코르소 이탈리아노가
금요일에, 라구나 세카에서 열리는 히스토릭 카레이스가 토, 일요일에 열리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자선행사와 클래식카 경매, 자동차 메이커의 파티 등이 열리고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들 중에서도 수퍼카나 클래식카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지요.
저도 최근 들어서는 클래식카 위크에 페블 비치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자동차 매니아라면,
특히 클래식카쪽에 관심이 많다면 이때에 맞추어 페블 비치쪽을 둘러보기만 해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입장료가 비싼 콩쿠르 델레강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주변에 풍성한
볼거리들이 있으니까요. 몬테레이 반도가 원래 풍광이 아름답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을 역임한 카멜(Camel-by-the-Sea)도 분위기 좋은 타운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고 페블 비치는 골프 치시는 분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Classic Car Week 가 아니라도 충분히 가볼 만한 관광지라는
얘기죠. 그냥 가봐도 아름다운 이런 곳에서 페라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애스턴 마틴
등의 최신형 수퍼카들과 함께 클래식 알파로메오, 로터스, 코브라 등 평소에는 보기 힘든
차들이 눈 돌리는 곳마다 시야 한 가득 들어오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입니다.
콩쿠르 델레강스가 열리는 현장 바로 옆에 설치된 AFAS(Automotive Fine Art Society)의
전시장도 페블 비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죠.
2001년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 갔을 때였습니다. AFAS의 전시장을 둘러보던 중
낯익은 AF/VK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여러 점 걸려있는 부스를 발견했습니다.
원본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이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사에
나온 대로 두 명이 작업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배경 그림 위에 자동차 그림이
오려 붙여진 것이었지요. 그런데도 도무지 두 사람이 따로 그린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만한 일관성과 함께 배경이 차의 표면에 반사되는 모습까지 정확하다는 점에서 새삼
경이롭기도 했습니다. 한참 그림에 취해있는데 어느 노신사가 다가와서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말을 건네왔습니다. 이것이 AF/VK중 AF라는 싸인의 주인공인
Arthur M. Fitzpatrick씨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흔히 ‘아트 피츠패트릭’ 이라고 불리며
가까운 사람들은 그를 피츠라고 부릅니다. 그날의 AFAS 전시장에서는 인사와 한참의
대화를 나누고 나중에 그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 저도 카비전의 외부 필자 중
하나였기에 그의 이야기는 비주얼로나 스토리로나 모두 흥미 있을만한 소재이기도
했습니다만 그보다도 제가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린 분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더 컸습니다.
그 해 가을 샌디에고 카운티의 칼스바드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아가 취재를 했고 그 이야기는
카비전 200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
1918년생인 피츠패트릭씨는 Society of Arts and Crafts와 Detroit School of Art를 졸업하고
당대의 유명 디자이너 John Tjaarda 가 이끄는 브릭스 바디 컴퍼니(Briggs Body Company)
에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코치빌더가 많았던 시기였고 브릭스
바디 컴퍼니도 그 중 하나였지요. 브릭스 바디에서 재직 당시 크라이슬러와 링컨 제퍼의
디자인에 참여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다를린(Darrin)이라는 코치빌더에서 다를린 패커드
세단과 컨버터블의 디자인을 맡았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에 입대하여 비행교본을
비롯한 여러 교육자료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했었답니다. 해군 복무 시 뉴욕에서 근무하던
그는 제대하기 전부터 남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로 광고미술계의 일을 하기 시작했고 머큐리는
1945년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전량을 그에게 맡기기에 이르렀습니다.
1949년에는 VK라는 사인의 주인공인 밴 커프만(Van Kaufman)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밴 커프만은 2차대전시에는 육군항공대의 훈련용 교재영화를 감독하고 그 이후 디즈니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한 경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피츠패트릭씨는 자동차를, 커프만씨는 배경과 인물을 맡는 분업이 이루어졌습니다.
1953년에 이르러서 이들 콤비에게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을 맡긴 회사는 머큐리, 링컨, 플리머드,
내쉬, 카이저, 그리고 뷰익 등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뷰익에서는 이들의 그림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여 더 많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주문하려 했으나 AF와 VK는 이미 맡아놓은 다른 광고들
때문에 뷰익의 주문을 소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정중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뷰익에서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대신 뷰익에서 일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고 하네요. 피츠패트릭씨는 어느 한 곳에 소속되기보다는 프리랜서로 남기 원했기
때문에 당연히 거절하리라 예상한 액수의 연봉을 불렀는데 뷰익에서 이를 수락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AF와 VK는 53년부터 뷰익의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연결된 GM과의 인연은 1959년부터 폰티액으로 옮겨졌습니다.
폰티액은 당시 와이드 트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제품 홍보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AF와 VK는 구도를 적당히 과장하면서도 사실감을 잃지 않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여 상당한
호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때로는 차가 넓고 크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화폭을 벗어나 앞부분이 살짝 잘린 구도를
사용하기도 했고
그림자에 살짝 가려진 차를 표현하기도 했으며
눈 덮인 차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www.fitz-art.com 에 가시면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보다 더 실감이 느껴지면서도 회화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갖춘 이들의 일러스트레이션은
59년부터 폰티액의 브로셔는 물론 잡지 광고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습니다.
특히 존 드로리언은 폰티액을 총괄하던 당시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인물이기도 하죠.
존 드로리언은 폰티액 부사장을 거쳐 시보레 총책임자를 역임하고 GM에서 사임이라고 해야
할지 축출당했다고 해야 할지 하는 상황으로 회사를 떠난 뒤 자신의 자동차 회사를 차려
드로리언 DMC-12를 만들었던 인물입니다.
이 차는 영화 백 투더 퓨쳐에 타임머신으로 출연하면서 더더욱 유명해지기도 했죠.
드로리언 DMC-12에 대한 이야기는 제 블로그의 다른 포스트에도 적혀있습니다.
http://blog.dreamwiz.com/beetle69/592807
피츠패트릭씨는 존 드로리언이 타계하기 전날 밤 그와 통화를 하기도 했을 만큼 친한 사이였습니다.
1969년 존 드로리언이 시보레로 발령이 난 뒤 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폰티액의 광고 예산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고 AF와 VK는 71년을 마지막으로 폰티액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폰티액을 떠났지만 GM과의 인연은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GM 유럽을 담당하고
있던 밥 러츠가 AF와 VK에게 오펠의 일러스트레이션을 2년간 맡겼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GMK(GM대우의 뿌리)가 조립생산 한 바 있는 오펠 레코드
그 이후 프리랜서로 돌아간 AF와 VK는 때로는 각자, 또 때로는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깝게 지냈습니다. AF와 동갑인 VK는 1995년 타계했습니다.
피츠패트릭씨는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건축가 등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해왔고 그의
작품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는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테크닉에 안주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는 80세 무렵부터
컴퓨터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밴 커프만씨가 곁에 없는 만큼 배경까지도
그가 그리고 있는데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로 라인을 그리고 포토샵에서 채색을 한다고 하네요.
그는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Cars에 컨설턴트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2005년에는 50년대 미국 스포츠카를 소재로 한 우표 America on the Move: 50’s Sporting Cars
를 발행했고 지난 10월에는 America on the Move: 50’s Fins and Chrome이라는 두번째
시리즈를 냈습니다.
후문으로 미국 체신청인 USPS(United State Postal Service)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 너무
세세한 것까지 간섭을 하는데 질려 더 이상 우표 후속작품을 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민간인이 공무원과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얼마 전 그는 90세가 되었습니다.
생일파티에는 저도 초대를 받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의 작업실
그는 9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정정하고 지금도 작품활동과 전시회 준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타고난 건강과 함께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가 끊임없이
자기관리를 해왔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제가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지, 산다면 그 나이에
그렇게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 만일 정신줄 놓지 않고 있다면 그 열정의 반이라도 남아있을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이를 잊은 열정과 아티스트에게는 은퇴가 없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그가 계속 건강하게 작품활동을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Happy 90th Birthday, Fi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