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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제네시스 PM580-T

풍딩이 2013. 7. 2. 16:34

한국차가 권위있는 국제 레이스에서 첫 우승을 거둔 것은 1992년이었습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랠리드라이버 로드 밀렌이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에서 스쿠프 터보를 몰고 클래스 우승을 차지한 것이었죠.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은 인디애나폴리스 500에 이어 미국에서 두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모터스포츠 이벤트입니다.   


해발 2,862m에서 출발하여 1,439m를 더 오르는 동안 156개의 코너를 지나는, 주행거리 19.99km의 코스에서 열리는 랠리입니다.  


산소가 희박하여 차에게도 어려운 조건이고 드라이버도 힘든 곳이죠.


1992년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클라임에서 스쿠프 터보로 양산 2WD 클래스 우승을 차지했던 로드 밀렌은 1994년 도요타 셀리카로 무제한급에 출전하여 10:04.06으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고 이 기록은 2007년까지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몬스터라는 별명의 타지마 노부히로가 스즈키로 신기록을 보유했고 지난해에는 로드 밀렌의 아들인 리스 밀렌이 현대 제네시스 쿠페로 9:46.164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종합우승을 거두었습니다.


리스 밀렌 레이싱은 2009년부터 현대자동차 미국법인의 후원하에 포뮬러 드리프트,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클라임, 글로벌 랠리크로스, 레드라인 타임어택 등의 레이스에 출전해왔으나 현대 모터 아메리카에서 모터스포츠에 대한 후원 대신 다른 스포츠로 홍보전을 벌이기로 결정하면서 이번 시즌을 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클라임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타이틀을 방어하기로 결정이 내려진 것은 올해 초였습니다.   


리스 밀렌 레이싱과 현대 모터 아메리카 담당자들과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으나 전격적인 결정이 내려진 것은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북미 오토쇼 진행중인 시기였죠.


결정이 내려진 뒤 저는 리스 밀렌 레이싱의 PM580T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차는 리스가 지난해 파이크스 피크에 투입하려고 계획을 세웠었으나 현대가 모터스포츠 예산을 줄이면서 개발이 취소되었던 차였죠.


일단 바탕이 된 플랫폼은 크로포드 DP03라는 레이스카입니다.  





리스는 이 차의 외형에 제네시스 쿠페의 형상을 조합하는 디자인을 구상했고 그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제가 투입되었죠.


크로포드 DP03에 제네시스 쿠페의 그린하우스를 씌우고 노즈의 끝단을 세워 제네시스 쿠페의 라디에이터 그릴 그래픽을 더한다는 것이 기본구상이었습니다.  2010년에 개발되었던 PM580에 비하면 양산 제네시스 쿠페의 스타일에 근접한 차로 만드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투입되었을 때는 대략 이런 상태였습니다.





하루 정도 후에는 전면부 디자인이 이렇게 바뀌었죠.  



리스는 앞부분 디자인을 이정도까지만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출장을 가있는 동안 제가 후드 디자인에 양산 제네시스 쿠페의 스타일링 요소를 더해넣었죠.






제가 생각한 이미지대로 만들기 하루쯤 전에 출장을 마치고 온 리스는 처음에 좀 못마땅해 했습니다.


제가 차량 후미쪽 디자인을 다듬고 있을줄 알았는데 아직 후드를 다듬고 있었으니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었지요.






그 전에 다른 프로젝트를 했을때 제게 디자인을 맡겼다가 실망했던 적 있냐고 반문했더니 알겠으니 생각하던 대로 진행해보라고 해서 하루 반정도 더 투자해서 후드 디테일을 마쳤습니다.   다 만들고 나니 리스도 꽤 흡족해하더군요.  




기본 성형작업에 사용된 재질은 폴리에스터폼입니다.   완성차업체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클레이를 사용하지만 자금력과 시설이 부족한 경우 이런 대안을 사용하기도 하죠.




뒷 펜더는 원래것보다 크게 부풀려서 만들었고 제네시스 쿠페의 그린하우스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다듬었습니다.





폴리에스터폼으로 작업한 형상 위에 파이버글래스를 덮어씌웁니다.









리어 카울의 원형 최종마무리 작업중에 찍은 사진입니다.  

폴리에스터폼으로 작업한 형상위에 파이버글래스를 덮고 표면을 다듬은 후 젤코트를 뿌려 최종마무리를 합니다.







                           

리어 카울 원형을 이용해 몰드를 뜨고 있습니다.





원형에서 뽑아낸 몰드입니다.  이 몰드를 이용해 원형과 똑같은 형상의 카본파이버 부품을 만듭니다.





차체 몰드




몰드에서 뽑아낸 카본파이버 바디패널들입니다.






제 업무는 원형을 리스가 원하는 대로 구체화시키는 것이고 이 원형에 몰드를 떠서 카본파이버 바디파츠로 만드는 것은 리스 밀렌 레이싱의 콤포지트 디비전인 Woven의 몫이었습니다.






3월 말까지 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 이후 친구가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 직장에서 맡은 일때문에 이번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 경기에 관람이나 취재는 하지 못했죠.


이번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의 최대 뉴스는 사실 리스 밀렌의 타이틀 방어가 아니라 푸죠의 재도전이었습니다.  

푸죠는 1988년 아리 바타넨이 몬 405 T16 파이크스 피크로 아우디가 세운 세계 신기록을 깨며 우승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푸죠 208 T16 파이크스 피크, 그리고 드라이버로는 9년 연속 WRC 챔피언인 세바스찬 로브를 투입하였죠.


사실상 모터스포츠에 대한 이해와 투자가 부족한 현대에 비해 푸죠는 르망 24시간과 세계 랠리 선수권전등 다양한 모터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그만큼 축적된 노하우와 데이터가 엄청납니다. 그런 바탕에 세바스챤 로브의 드라이빙이 결합된 푸죠는 이번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클라임에서 8:13.878이라는 경이적인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마 로브의 신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마치 로드 밀렌이 냈던 기록이 13년동안 깨지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리스 밀렌은 9:02.192로 2위에 올랐습니다.   밀렌에게는 현재까지 최고의 개인기록이지만 로브의 기록에는 크게 뒤지는 2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리스 밀렌은 내년에도 다시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에 출전하겠죠.  어느 자동차 회사와 함께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내년에도 현대자동차와 함께 출전한다면 보다 많은 준비와 투자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현대의 WRC 복귀와 함께 파이크스 피크에서도 우승 타이틀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