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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딩이의 자동차 이야기
4만 1천 피트 상공에서 연료가 떨어진 여객기 본문
지금까지 20년 넘게 운전을 하면서 길에서 기름이 떨어진 경험이 딱 한 번 있습니다.
사실 다른 한번은 주유소 한 블록 전에서 시동이 꺼졌으나 다행히 내리막이어서 주유소까지 서지
않고 간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건 아무튼 주유소까지 갔으니 길에서 선 것으로 치지 않았습니다.
운전자로써 창피한 경험이기는 하지만 연료계라는 것이 차의 계기판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녀석이기도 합니다. 자동차는 가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갓길에 서면 되지만 비행기라면 어떨까요?
세스나 같은 경비행기는 비행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엔진이 꺼져도 충분히 활공이
가능하다고 합니다만 여객기의 경우라면?
실제로 운항 중 연료가 떨어진 사례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 사건을 다룬 영상을
발견해서 퍼왔습니다.
승객 61명과 승무원 8명이 탑승한 에어 캐나다 143편은 몬트리올을 출발하여 목적지인 알버타주
에드몬튼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기종은 당시 에어 캐나다에 4대만 도입된 최신기종 보잉
767-200이었습니다. 143편은 당시 비행시간 150시간밖에 되지 않은 완전 새 비행기였죠.
많은 부분이 전자화된 최신기종이어서 조종사나 정비요원들에게는 생소한 기종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기장은 1만5천시간의 비행경력을 가진 48세의 밥 피어슨(Bob Pearson),
부기장은 7천 시간의 비행경력을 가진 마리스 켄텔(Maurice Quintal) 이었습니다.
두 조종사 모두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신기종에는 친숙하지 않은 상태였죠.
에어 캐나다의 정비사인 릭 디온(Rick Dion)은 당시 휴가를 맞아 가족여행으로 이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었는데 기장과 부기장의 배려로 조종석에서 신기종의 비행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목적지까지 반정도 된 레드 레이크 상공 4만1천 피트 고도에서 왼쪽 연료펌프중 하나의 압력이
규정치 아래로 떨어졌다는 경보음이 콕핏에 울려퍼지며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여객기와 마찬가지로 767도 양쪽 날개에 연료탱크가 내장되어있고 장거리 비행을 위한
보조 탱크가 동체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출발하기 전 연료가 충분하다는 정비요원의 이야기를 들었고 새 비행기의 비행 컴퓨터에
나타난 것으로는 연료부족의 징후가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 세팅이
잘못되어 있었다더군요. 보잉 767은 비행 컴퓨터와는 별도로 작동하는 디지털 연료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143편은 당시 이 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잠시 후 또 다른 연료펌프에서 연료압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메세지가
콕핏을 울렸습니다. 밥 피어슨 기장은 연료펌프의 이상으로 간주했으나 만일을 대비해
목적지인 에드몬튼 대신 가장 가까운 주요 공항이 있는 위니펙으로 기수를 돌리기로 결정합니다.
항공관제소에 목적지 전환을 확인한 뒤 위니펙으로 방향을 바꾸는 동안에도 이상징후를 알리는
연료펌프의 숫자가 점점 늘더니 결국 왼쪽 엔진이 멈추었습니다.
밥 피어슨 기장과 마리스 켄텔 부기장이 비상착륙 절차를 재확인하느라 바쁜 동안 콕핏에
동석한 정비사 릭 디온은 오른쪽 연료펌프에도 경고등이 들어온 것을 발견했습니다.
잠시후 오른쪽 엔진마저도 작동을 멈추었습니다. 모든 엔진이 작동을 멈추자 발전기로부터
공급되던 전력이 끊기고 배터리의 비상전력으로 작동되는 기본 계기를 제외한 모든 디지털
계기가 꺼져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레이더에 항공기의 현위치를 정확히 알려주는 발신기도
꺼졌기 때문에 위니펙 항공관제소의 레이더에서 에어 캐나다 143편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엔진은 추력과 전력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조종에 필요한 유압도 발생시킵니다.
기본적으로 유압이 없으면 비행기는 완전히 조종불능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시동이 꺼진 차에서 파워 스티어링이 작동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항공기에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램 에어 터빈이라 하는 장비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프로펠러에 유압펌프가 연결된 형태인 램 에어 터빈은 풍력으로 비행기의 기본적인 컨트롤이
가능하도록 유압을 발생시키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램 에어 터빈을 통해 기본적인 제어만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143편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비상상황의 체크리스트에서 두 엔진이
모두 멈추었을 경우를 찾아보았는데 아예 그런 섹션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밥 피어슨 기장은 글라이더 조종경력이 있는 조종사였습니다. 피어슨 기장은 엔진이
멈춘 시점부터 커버한 비행거리와 고도저하를 계산하여
그 동안 항공관제소에서는 구식인 반사 레이더를 작동시켜 143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143편은 현재 위치와 고도부터 위니펙 공항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보았더니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143편의 당시 위치에서 위니펙보다 20마일 가까운 김리(Gimli)에는 공군기지로 쓰이던
활주로가 있습니다. 게다가 켄텔 부기장이 군 복무 시절 김리 공군기지에서 훈련을 받았던
적이 있었기에 급히 기수를 오른쪽으로 돌려 새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에어 캐나다 143편은 비상착륙을 앞두고 랜딩기어를 내렸습니다.
유압이 없는 경우 랜딩기어는 중력으로 내려가 제 위치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잠기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무거운 메인기어는 무리없이 펼쳐졌으나 가벼운 노즈기어는 제 위치까지
내려오지 못한 채 중간에 걸려버렸습니다. 조종석에서 육안으로 김리 활주로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활주로의 위치에 비해 143편의 고도가 너무 높았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비율로 하강할 경우
활주로를 지나치게 되고 급히 기수를 낮출 경우 착륙 속도가 너무 높아 정지하기 전에
활주로를 벗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압 상실로 인해 플랩을 사용하여 낮은
속도에서 충분한 양력을 얻는 통상적인 착륙방법도 구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주어진 선택은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큰 반경의 360도 회전을 통해 나선형으로 고도를
낮추는 것이었습니다만 그러기에는 고도가 낮았습니다. 엔진이 정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착륙을 위해 주어진 기회는 단 한번. 밥 피어슨 기장은 나선형 하강대신 나머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선택은 사이드 슬립이었습니다.
항공기나 조종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영상에 나타난 사이드 슬립이라는 테크닉을 보니
자동차의 드리프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이드 슬립은 에어론과 러더를 반대방향으로 사용하여 비행기가 옆으로 기울어진 채 속도와
고도를 빠르게 낮추는 조종기법이라고 합니다.
켄텔 부기장이 훈련을 받던 김리 공군기지는 이제 활주로가 아니라 드래그 레이스가 열리는
모터스포츠 파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에어 캐나다 143편이 사이드 슬립으로 잔뜩 기울어진
채 김리 활주로에 빠르게 다가가던 토요일 오후, 다행히 드래그 레이스는 끝나고 스포츠카
동호회 모임이 열리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활주로는 비어있었고 사내아이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활주로를 달리고 있었다네요. 엔진이 꺼진 상태여서 아무런 소리도 없이 빠르게
다가오는 여객기의 존재를 모른 채 말입니다. 피어슨 기장은 비행기가 활주로에 비상착륙
하자마자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노즈기어가 펼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 앞부분은
그대로 지면에 긁히면서 불꽃을 뿜어냈고 최대제동을 견디지 못한 메인기어의 타이어도
얼마 가지 않아 파열되었다죠. 자신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여객기를 발견한
아이들은 정신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댔고 조종석에서는 공포에 어린 그들의 표정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에어캐나다 143편은 아무 부상자 없이 활주로에 정지했습니다. 화재나 폭발 등을 대비하여
비행기에서 비상탈출하는 과정에서 경미한 부상을 입은 승객들만 몇 명 있었다고 하네요.
이 사건에 대한 조사는 다음날 곧바로 착수되었습니다. 김리 드래그스트립에 비상착륙한 보잉
767의 연료탱크에는 17갤런에 못미치는 항공유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해당 항공기의 연료탱크 용량이 2만4천 갤런이었으니 실질적으로 텅 비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최신예 항공기에서 어떻게 운항중 연료가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을까요?
연료누출의 가능성을 조사해보았으나 의심할만한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론은 출발할 때 충분한 연료를 싣지 않았다는 것이었지요.
조사결과 해당 항공기의 연료계를 관장하는 마이크로 프로세서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도
있었으나 부피와 무게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 때문에 발생한 실수였다고 합니다.
에어 캐나다에서는 그 이전까지 연료 부피를 파운드로 환산했으나 767은 처음으로
미터법을 적용한 경우였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미국에 온 뒤 지금까지도 가끔 적응되지 않는 것이 도량형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거리를 마일로 표시하는 것도 처음에는 조금 헷갈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대로 익숙하고 파운드로 표시하는 무게도 킬로그램보다 두 배 조금 넘는 숫자로
나타난다는 것으로 감을 잡지만 화씨로 표시되는 온도는 한국에 다녀오면 다시 적응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에어 캐나다 143편 사건은 도량형 환산 문제와 함께 조종실 승무원이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드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기장과 부기장 이외에 항법사가
조종실에 탑승했습니다. 143편 사건이 발생하기 전 연료량 확인은 항법사의 업무중
하나였다고 하네요. 아무튼 에어 캐나다 143편 사건은 항공사고로써는 흔치 않은
해피앤딩이었습니다.
2008년 1월 24일
위키피디아에서 파왔습니다. 마지막 비행에는 밥 피어슨 당시 기장과 마리스 켄텔 당시
부기장을 비롯해 에어캐나다 143편의 객실승무원중 3명이 승객으로 이 비행기에
동승했다고 합니다. -풍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