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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딩이의 자동차 이야기
자동차 광고촬영에 참여하다. 본문
아래 동영상은 요즘 방송이 시작된 인피니티 광고입니다.
저는 이 광고의 촬영에 드라이버중 한명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메인드라이버이거나 거창한 스턴트를 한 것은 아니지만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지요.
이런 기회가 온 것은 몇년 전 SBS에서 자동차 관련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데 약간 관여하면서 알게 된 분을 통해서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촬영과정에서 리스 밀렌 레이싱의 취재도 포함이 되어 있었는데 제가 거기 한국인 직원이어서 제게 연락이 오고 취재 당일에는 통역도 하고 그랬었지요.
취재 오기 전날 코리아타운에서 SBS PD 두분과 캘리포니아 현지 코디네이터를 만나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음날 있을 촬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예전에 찍었던 자동차 영상들을 조금 보여드렸죠.
촬영팀이 유럽에서 차량 주행장면을 많이 찍지 못해서 미국에 와서는 사막이나 바닷가처럼 탁 트인 배경에서 차가 달리는 장면을 찍고 싶었는데 혹시 도와줄 수 있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주말에 촬영을 돕기로 했습니다.
방송국에서 현대자동차측에 협조를 구해 제네시스와 쏘나타를 가져오기로 했고 저는 운전을 맡기로 했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제가 믿을 수 있는 드라이버들이 함께 가는게 좋겠다 싶어서 아마추어 레이서로서 상당한 경력을 가진 박강우군과 한국에서 레이스를 잠깐 했었고 현재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 안기환을 불러서 같이 가기로 되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그때 찍은 장면중 두개를 아주 짧게 편집한 버전입니다.
처음 부분에서 안기환은 카메라가 장착된 차량을 몰았고 박강우가 쏘나타를, 제가 제네시스 쿠페를 몰았었습니다.
두번째는 제가 쏘나타를 몰고 스핀턴으로 정지하는 장면입니다.
아무튼 그때 현지 코디네이터께서는 저희 일행이 한 일은 Precision Driver들을 불러야 찍을 수 있는 장면이었는데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셨었죠.
얼마 전 그분의 소개로 다른 코디네이터께서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자동차 광고촬영에 스턴트 드라이버들이 필요한데 팀을 구성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지요.
8월 6일 월요일에 온 전화였고 촬영일이 주말이라 하셔서 2~3주쯤 뒤인줄 알았는데 바로 그 주말인 11~12일이라고 하더군요.
인피니티 광고인데 메인 드라이버 2명, 그리고 BMW를 몰 서브 드라이버가 8명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박강우군은 이미 졸업을 하고 귀국한 뒤였고 안기환은 토요일에 다른 일이 있던 터라 일단 다른 사람들로 급히 팀을 구성해야 했습니다.
일단 맹준우 선수에게 연락해서 광고촬영 의뢰가 들어왔는데 드라이버로 참가할 수 있겠는가 물어봤습니다.
라스베가스전에 출전할 경주차를 만들고 있던 중이어서 무척 바빴을텐데 그래도 응해주어서 일단 메인드라이버는 그와 제가 맡기로 하고 이제 서브 드라이버들을 구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전화하고 카톡 날리고 해서 일단 몇명정도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습니다만 확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화요일에 코디네이터께서 전화를 주셔서 시애틀의 프로덕션에서 이미 메인 드라이버 두명을 고용했으니 서브 드라이버들만 있으면 된다고 하시더군요. 서브 드라이버들도 7명 정도면 된다고 했습니다.
일단 맹선수에게 연락해서 메인이 아니라 서브 드라이버밖에 자리가 되지 않는데 그래도 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맹선수는 제게 하겠다고 했으니 메인이든 서브든 하겠다고 그러더군요.
사실 포뮬러 드리프트 선수가 서브 드라이버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어서 하지 않겠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죠. 아무튼 고맙더군요.
나머지 서브드라이버는 제 지인 한분에 맹선수의 S 엠파이어팀 멤버들로 해서 인원구성이 되었습니다.
촬영 장소는 Lucerne Vally 인근에 자리잡은 Soggy Dry Lake였습니다.
고대에 호수였다가 물이 마르면서 평원을 이룬 곳이죠.
LA 인근에서 이런 지형으로는 Lake El Mirage라는 곳이 가장 잘 알려져있습니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오전 10시경 촬영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국도에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곳이더군요.
아래는 미니카로 주행대열과 카메라카의 위치등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스턴트 코디네이터는 에릭이라는 백인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척 노리스 아들이라더군요.
나스카 트럭 시리즈에서 활약했었다고 합니다.
에릭이 데리고 온 드라이버 두명과 저, 맹준우 선수를 포함해 저와 함께 온 드라이버중 4명이 리허설에 들어갔습니다.
대열의 뒤쪽에 선 차는 앞차의 먼지때문에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아서 생각만큼 바짝 붙여서 운전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대열에 대해 주행연습을 하고나서 카메라가 Ultimate Arm의 세팅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Ultimate Arm은 차량이나 보트 등에 장착할 수 있는 지미집인데 메르세데스 벤츠 ML55 AMG에 달려있었습니다.
무거운 크레인장비가 지붕에 장착된 만큼 롤케이지로 차체를 강화시키고 높아진 무게중심에 대응하기 위해 서스펜션을 손보았을 뿐만 아니라 수퍼차저를 장착하여 출력도 550마력으로 높였다고 합니다.
Ultimate Arm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사막 한가운데에 아이스크림 트럭이 나타나서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대기만 하고 있어서 상황을 살펴보았더니 Ultimate Arm의 크레인 끝단 모터가 작동하지 않아 이리저리 원인을 찾고 있더군요.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저멀리에서 천둥번개가 치더니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이 보입니다.
Photo by Joe Cho
바람이 심해지더니 비구름이 점점 가까와지더군요. 촬영팀에서 일단 장비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더군요.
드디어 폭풍우가 저희가 있던 곳에 이르렀습니다.
내리는 빗방울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F10 5시리즈에 타고 있다가 제 차로 옮겨타는 동안 비를 맞았는데 꽤나 따가울 정도였습니다. 지형 특성상 물이 빨리 고이고 물이 들어차면 뻘이 되어 차가 빠져버리기 때문에 다들 부산하게 움직여 드라이 레이크베드를 탈출했습니다. 이렇게 글로 써서 그렇지 사실상 애니메이션 벅스라이프에서 비가 쏟아질때 개미떼들이 대피하던 장면과 흡사한 상황이었지요.
일단 그날 촬영은 더 이상 진행불가였고 언제 촬영이 재개되느냐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저와 함께 온 드라이버들은 모두 직장이 있기 때문에 주중에는 촬영에 임할 수 없는 입장이었죠.
일단 일요일에 코디네이터와 통화를 했습니다. 수요일에 촬영을 다시 하게 될 것 같다더군요.
몇시간 후의 통화에서는 촬영허가가 조정된다면 화요일에 촬영할지도 모르겠다고 하시더군요.
일단 주변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을만한 사람들 중 프리랜서이거나 쉽게 일을 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미리 연락을 해두었습니다.
월요일에 결정된 것으로는 화요일 촬영진행이었습니다. 일단 저는 저 스스로를 포함하여 다섯명의 드라이버를 모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구요. 그나마 일요일에 미리 연락을 해둔 사람들이 몇명 있어서 간신히 인원수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에는 제가 일이 좀 있어서 늦게 출발하여 중간에 3명을 픽업하여 촬영장소 인근에 촬영팀이 묵고있는 숙소로 갔습니다. 도착하니 새벽 2시가 다 되었더군요. 촬영 로케이션으로 출발하는 시각은 4시.... 두시간도 채 못자고 기상하여 떼빙으로 촬영장소로 향했습니다.
아침해가 떠오르기 전 빛이 아름다울 때 인피니티를 세워둔 채 고정샷을 찍는데 배경에 먼지를 일으켜달라고 하여 제가 F10 BMW로 좀 큰 원돌이 비슷하게 인피니티 주변을 반바퀴정도 돌았습니다.
대기하던 중 창밖으로 한 컷...
몇번 이 장면을 찍고 나서까지 에릭은 아직 촬영장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촬영팀에서는 혹시 제가 인피니티로 카 메라와 떠오르는 태양 사이의 지점에서 카운터를 치고 지나가는 장면을 연출해줄 수 있겠냐고 하더군요. 시도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차가 옆으로 미끄러지며 풀카운터 들어간 시점이 너무 늦었다고 해서 그 다음번에는 약간 일찍부터 미끄러뜨렸습니다. "괜찮았는데 그것보다 아주 조금만 늦게 드리프트로 들어오실 수 있겠어요?" 라고 무전이 들어와서 세번째 시도를 했습니다. 한번 드리프트를 할 때마다 차가 흙먼지를 뒤집어쓰기 때문에 매번 아르바이트생들이 차를 닦습니다. 그때문에 세번째 시도때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타이밍을 잘 잡아야겠다고 신경을 썼는데 꽤 만족스럽게 나왔다고 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인피니티를 세우고 내리면서 보니 에릭이 와있더군요.
촬영팀에서는 제가 드라이버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에릭에게도 이야기를 해두어서 그 역시 자신 이외에 네명의 드라이버를 더 데리고 왔습니다. 그가 스턴트 코디네이터이자 메인 드라이버인 만큼 그가 데리고 온 드라이버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저와 제 학교 동창이자 본듀란트 스쿨 출신의 존 박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여러대가 열을 맞추어 주행하는 장면을 찍은 다음에 에릭은 Ultimate Arm과 함께 단독주행장면을 찍고 저는 헬리콥터에서 찍는 장면에 투입되었습니다.
여러대의 BMW가 대열에서 쫙 퍼져나가는 항공촬영장면은 사실 제가 운전한 차 한대만 여러각도에서 찍은 다음에 CG로 합성하여 여러대로 늘린겁니다.
점심시간 무렵까지 휴식을 취한뒤 오후에 다시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대가 대열을 맞추어 달리는 장면들을 찍는 것이었지요.
전번 촬영에도 참여했던 드라이버는 저와 에릭, 그리고 에릭이 데려온 윈스턴뿐이었기 때문에 미니카로 브리핑을 한 뒤 리허설에 들어갔습니다.
각 포메이션에 따른 리허설을 몇번 하고는 곧바로 촬영에 돌입했습니다.
포메이션별로 차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고 그에 따라 각자의 움직임도 조금씩 달라져야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드라이버들이 BMW를 몰고 에릭 노리스가 인피니티를 몰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BMW들이 동시에 대열을 벗어나고 어떤 장면에서는 순차적으로 이탈하는 등이어서 각자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지요.
다들 이런 계통의 일을 해보았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호흡이 생각보다 잘 맞더군요.
늦은 오후까지 촬영을 하여 필요한 장면은 모두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저와 함께 왔지만 촬영에 참여하지 못한 드라이버들은 사막의 이국적인 풍경을 보면서 하루 휴식을 취하고 일당을 받았습니다.
주인공인 인피니티가 하얀색이고 경쟁차종인 BMW들이 검은색이어서 인피니티가 배경에 뭍혀 덜 부각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들었었는데 완성된 편집본을 보니 꽤 잘나왔더군요.
중요한 일을 맡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광고에 참여한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종종 생기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