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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딩이의 자동차 이야기
2010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클라임 본문
올해로 88회를 맞는 파이크스 피크 인터네셔널 힐클라임(Pikes Peak International Hill Climb) 이 지난 6월 27일 미국
콜로라도주의 파이크스 피크에서 열렸습니다. 파이크스 피크는 로키 산맥의 한 자락으로 콜로라도 스프링스시 서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파이크스 피크 인터내셔널 힐클라임은 미국의 모터스포츠로서는 인디애나폴리스 500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산악도로를 등판하는 힐클라임 경주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해발고도 2,862 m (9,390 ft) 에서 출발하여 고도 1,439 m (4,721 ft)를 더 오르는 코스로 156개의 코너가 있는 19.99 km
(12.42 miles)의 구간에서 열리며 높은 고도에서의 희박해진 산소로 인해 차에게도, 드라이버에게도 모두 가혹한 조건이지요.
우리나라에는 1992년 로드 밀란(Rod Millen)이 현대 스쿠프 터보로 출전하여 전륜구동 양산차 클래스 우승을 거두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드 밀란은 70년대 중반 뉴질랜드 랠리 챔피언쉽으로 프로 드라이버 경력을 쌓기 시작하여
다양한 랠리와 오프로드 레이스에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1978년 미국으로 건너와 북미지역 랠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요. 로드 밀란은 80년대부터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에 출전하기 시작했으며 1994년에는 무제한급에서
도요타 셀리카로
별명의 타지마 노부히로에 의해 갱신되었죠. 타지마가 스즈키 XL7 힐클라임 스페셜로 세운 기록은
로드 밀란이 세운 기록은 파이크스 피크의 경기구간이 전반적으로 비포장일 때였고 타지마 노부히로가 그 기록을 갱신한
것은 일부 구간의 포장이 이루어진 이후였기 때문에 동등한 조건으로서의 비교는 어렵다고 하네요.
하지만 파이크스 피크 도로포장은 그 후 매년 조금씩 진행되었고 내년에는 전구간 포장도로로 바뀐다고 합니다.
올해 파이크스 피크의 최대 관심사로는 로드 밀란의 아들 리스 밀란(Rhys Millen)이 대를 이어 종합신기록 보유자로
등극하느냐 하는 것과 10분대의 벽이 깨지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현대 제네시스 쿠페를 가지고 양산차
바탕의 타임어택 디비전 2WD 클래스에서
제가 리스 밀란과 가까워진 것은 지난 시즌 포뮬러 드리프트에서였습니다.
올해 초 다른 일이 있어서 리스 밀란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그가 올해에는 무제한급으로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에
출전할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2009년에는 제네시스 쿠페 양산차를 출전 클래스 규정에 맞게 튜닝한 차로 출전했던 만큼
이번 해에는 최상위 클래스인 무제한급에 출전하는 것이 알맞은 순서이기도 했습니다.
무제한급 출전차의 명칭은 제네시스 PM580입니다. 제네시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에 대해 양산형 제네시스와 닮은곳도
없이 생뚱맞게 이름만 가져다 썼다는 반응도 많이 있습니다. 사실 PM580의 경우 엔진만 제네시스의 것이지 다른 부분은
제네시스 양산차와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엔진 블록의 경우 순정상태에서 약간의 보강이 이루어졌고 헤드는 순정상태
이므로 제네시스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나스카 출전차들을 보면 외형은 같은 이름의 시판차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습니다.
시판차는 전륜구동 V6인데 나스카 출전차는 후륜구동 V8이죠. 예전에는 일부 바디패널을 양산차에서 가져와야 했지만
COT (Car of Tomorrow)가 쓰이면서 그런 점마저도 사라졌습니다. 그에 비하면 PM580은 외형상 제네시스와 닮은 점은
없지만 내용면에서는 오히려 양산차와의 연결고리가 더 강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아무튼 제가 이 차를 처음 보았을 당시 진행상황은 바탕이 된 팔머 재규어 JP1의 섀시가 정반 위에 올라가 있었고
바디는 원형을 만들고 있던 단계였습니다.
제가 제네시스 PM580을 처음 보았을때의 진행상태는 이랬었습니다.
팔머 재규어 JP1은 르망 프로토타입(LMP) 레이스카 스타일로 오픈 콕핏 2인승입니다.
리스 밀란은 파이크스 피크 도로의 포장구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지상고가 높고 섀시 보강이 많이 되어
무게가 늘어난 오프로드형 경주차보다는 타막 성능을 중시한 경량 레이스카로 승부를 걸기 위해 LMP 스타일의 차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재규어 V6대신 현대 제네시스 쿠페에서 가져온 람다 엔진을 탑재하고 와이즈만 5단 시퀜셜
트랜스미션을 장착한 4륜구동으로 만들기 위해 섀시에 대대적인 변경이 가해졌습니다.
젠쿱의 3.8리터 엔진에 스트로크를 늘려 4.1리터로 배기량을 높이고 HKS 싱글 터보차저(T04Z)를 장착하여 고고도에서도
제성능을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4륜구동은 기본적으로 트랜스미션에서는 센터 디퍼렌셜 없이 앞뒤쪽 모두로 동력이
전달되며 중간에 장착된 전자제어 클러치를 통해 앞차축으로 가는 동력을 제어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100% 후륜구동부터 50:50 4륜구동까지 구동상태를 조절할 수 있죠.
브렘보 풀 카본 브레이크도 이 차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인디카에 쓰이는 이 카본 브레이크의 일반 판매가격은 1만 7천 달러라고 하더군요.
금속부품과 차이가 나는 열팽창으로 인해 허브 플레이트는 따로 깎아서 만들었는데 리스 밀란이 직접 선반과 밀링으로
하나하나 만들었습니다.
바디는 모두 카본파이버로 제작되었으며 차체 바닥부분에는 알루미늄 하니컴도 적용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4륜구동 시스템을 갖추고도 공차중량은 876kg으로 상당히 가벼운 몸무게를 갖게 되었습니다.
팔머 재규어 JP1을 바탕으로 했지만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개발과정에서 작은 문제들이
하나둘씩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다보니 스케쥴이 조금씩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방 해결책을 찾은 문제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런 시간이 쌓이자 최종적으로는 원래 계획했던 것에 비해 상당히 늦게
완성되었죠. 그러다보니 세팅에 필요한 시간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첫 주행 테스트는 6월 10일에 있었습니다.
6월 10일에 차를 트레일러에 싣기 직전 찍은 모습입니다. RMR이 위치한 헌팅턴 비치(Huntington Beach)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얼바인(Irvine)의 엘 토로(El Toro) 활주로에서 셰이크다운 후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에 있는 HKS USA의 4륜 다이노에서
출력을 측정하며 기본적인 엔진 세팅을 했습니다.
6월 13일과 14일에는 다시 엘 토로 활주로에서 시험주행을 하며 서스펜션을 세팅했습니다.
엘 토로는 원래 해병대 항공기지였으나 미 국방성의 Base Realignment and Closure라는 군비감축으로 인해 1999년부터
군용으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4개의 활주로가 있는 엘 토로에서는 자동차 메이커의 테스트나 시승 이벤트, 각종 자동차 클럽의 오토크로스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고 있으며 켄 블락의 짐카나 동영상도 이곳에서 촬영되었지요.
제 차도 여기서 기념사진 한장 찍고 왔습니다.
테스트 이후 차체 도색과 마킹작업을 마치고 6월 23일부터 파이크스 피크에서 현지 테스트를 가졌습니다.
테스트 과정에서 변속기 제어부분에 버그가 있었는데 완전히 해결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예선에 임하게 되었고 예선 결과도
만족스럽지는 못했습니다.
경기 당일인 27일 아침, 날씨가 상당히 맑더군요.
파이크스 피크는 힐클라임에는 자동차/트럭 부문에 11개 클래스, 그리고 2륜차/쿼드 부문에 10개 클래스가 있습니다.
빈티지 클래스에 출전한 오스틴 힐리 3000
역시 빈티지 클래스의 볼보 아마존. 번호판을 보니 122시리즈인가봅니다.
수퍼 스탁 클래스
오픈휠 클래스
트럭부문도 있습니다.
사고도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터사이클도 다양한 클래스로 나뉘어집니다.
사이드카
올해로 5번째 종합우승을 차지한 몬스터 타지마 노부히로씨의 스즈키 SX4 스포트 힐클라임 스페셜입니다.
현대 제네시스 PM580. 차 뒤쪽으로 리스 밀란과 로드 밀란이 서 있습니다.
리스 밀란이 출전하는 언리미티드 클래스에서는 예선 1위인 타지마상이 제일 먼저 출발순서를 가졌습니다.
저와 팀원들 모두 출발선에 있었기 때문에 필 롱 현대 딜러에서 제공한 베라크루즈의 라디오를 통해 중계방송을 들었습니다.
해설자는 수년간 타지마의 주행을 보아왔지만 이번 주행은 대단히 빠르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방송을 하더군요.
910마력의 스즈키 SX4 스포트 힐클라임 스페셜로 좋은 날씨이 포장율도 높아진 코스를 공략하는 그가 좋은 기록을 낼
가능성은 충분했습니다. 파이크스 피크는 높은 산악지대인 만큼 기상이 변화무쌍한데 그가 달릴 때는 날씨도 최적이었습니다.
이러다가 타지마씨가 우승은 물론이고 10분대의 벽을 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계측결과는 10분 11.490초였습니다. 예전보다 포장구간이 늘어났고 날씨도 그의 편이었기 때문에 10분대의 벽을
돌파하지는 못할지라도 상당히 근접한 기록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였습니다.
예전에는 무제한급도 약간의 시간차이를 두고 출발했었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한대가 코스를 완전히 주파한 뒤 코스점검이
있고 그 이후에 다음번 주자가 출발하는 다소 느린 템포로 진행되었습니다.
타지마씨가 달릴때까지만 해도 하늘이 맑았는데 리스 밀란이 출발선에 대기하고 있을 때 산꼭대기 부근에 검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예감이 좋지 않더군요. 리스 밀란의 제네시스 PM580이 출발선을 통과해 코너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본 후 베라크루즈가 주차된 곳으로 걸어왔습니다. 알고보니 제 시야에서 사리진 직후 변속기 제어문제가 발생하여
정지했다가 재출발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시간도 계측에 포함되므로 여기서 적어도 30초 정도는 손실을 본 셈이죠.
코스 후반부에서는 브레이크의 성능저하로 고전했으며 스핀까지 한번 한데다 중반 이후는 비, 그리고 후반 일부 구간에서는
눈이 내리기까지 하여 결국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하는 시간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리스 밀란도 변속기와 브레이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고 서스펜션의 세팅도 약간 미흡했던 것에 비해 엔진은 정말
훌륭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지난 몇 달에 거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록 갱신 도전에 실패한 것에서 팀원들 모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누가 뭐래도 가장 실망한 사람은 리스 밀란 본인이었겠죠.
내년도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에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세팅의 완성도를 높인 후 재도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올해의 경기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내년도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것은 그만큼
제가 리스 밀란과 PM580에 갖는 기대와 믿음이 크기 때문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