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딩이의 자동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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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34 Diary

E34를 입양했습니다.

풍딩이 2010. 4. 9. 17:18

It never rains in Southern California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남부 캘리포니아에 비가 잘 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기인 겨울에는 때로 꽤 많은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릴 때도 있지요.


 

지난해 말부터 아는 분이 경영하는 주유소에서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프리랜서로 하는 일은 계속 하면서 주유소 일은

파트타임으로 병행하게 된 것이었는데 말로만 듣던 권총강도도 한번 당해 보는 등 새로운 경험도 했었죠
. 

아무튼 비가 많이 온 날 퇴근길이었습니다.  10번 프리웨이 1차선에 꽤 긴 구간에 거쳐 물이 차 있었는데 옆 차선에는

차들이 많이 있어 그대로 진행을 했지요
.  열을 받은 엔진에 갑자기 찬물이 끼얹어진 탓인지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엔진인데 크랭크케이스에 균열이 갔습니다
.  사실 오랫동안 비틀을 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 KARA 기술위원장이신

이삼 선배님께 전화통화를 하면서 여쭈어봤더니 크랭크케이스 체결 볼트의 조임토크가 일정하지 않을 경우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  아리조나에서 사 온 엔진이었는데 전문가가 아닌 오너가 집에서 한 작업이어서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기는 했습니다
.  사실 장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진의 나사 일부가 풀려버린 적이 있어서 헤드

스터드를 비롯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들은 토크렌치로 확인을 했는데 크랭크케이스는 확인해보지 않았었거든요
. 

당장 차가 없이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
시승차를 매주 받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만 매주 승기

여력이 없더군요
.  오래 전 탄 차 중에서도 아직 시승기를 마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던 중 주유소 사장님께서 자신의 혼다 어코드 왜건을 빌려주셔서 정말 유용하게 썼습니다.




그래도 빌려주신 차를 타는 것은 임시방편이고 제 차에 대한 선택의 방향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 

크게 나누어 비틀을 그냥 이 상태로 싼 값에 팔고 다른 차로 바꾸는 방법, 고쳐서 타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겠죠. 

제 비틀은 원래 고쳐서 타려고 샀었던 차인 만큼 내외장의 상태는 제가 살 때부터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엔진까지 망가진 상태라면 값은 얼마 받지 못할 것이 뻔하죠. 

아무튼 여러가지 고민 끝에 비틀을 너무 오래 타오기도 했고 하니 다른 차로 바꿔보자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습니다.  

일상용 차로 쓰면서 종종 트랙도 갈 수 있는 차로 BMW 3시리즈(E30) 수동변속기차 매물을 검색해보았습니다.

비틀의 경우 처음 살 때
도색도 새로 하고 인테리어도 원하는 대로 꾸며야지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내외장의 상태는

중요하게 보지 않았습니다만 이번의 경우는 그대로 탈 생각으로 구입하는 차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좋은 상태의 차를

찾아보았습니다
.  연식이 오래된 차라면 가격이 너무 낮은 차보다는 조금 값을 더 주더라도 상태가 좋은 차를 고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미국처럼 공임이 비싼 곳에서라면 25백 달러짜리 차를 사서 1천 달러 들여도 35백 달러짜리

차보다 좋은 상태로 만들기 어려우니까요
.

 

돈이 좀 모이기 전에 나온 상태 좋은 매물은 금방 팔려나가고 그 이후로는 마땅한 차가 나오지 않더군요. 

2
천달러 이하로 나온 차들도 몇 있었는데 사진으로 볼 때는 그럴듯했던 것에 비해 실제로 가 보니 상태가 상당히 좋지

못했고 타보니 더더욱 아니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  3천 달러 이상으로 나온 상당히 좋아 보이는 매물은 제가 연락했을

때는 이미 팔리고 없더군요
 

깨끗해보이고 관리상태를 상세히 적어놓아 믿음이 가는 매물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자동변속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비틀을 트랙용 차로 개조하고 이번 사는 차는 그냥 일상용 차로만 탈까 하고 관점을 바꾸었더니 갑자기

구매대상이 E30이외의 차들까지 확 넓어졌습니다
.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여 출퇴근은 자전거를 이용할 생각이니

연비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고 트랙주행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조금 큰 차나 컨버터블까지 고려대상에 포함이 되더군요
.

가격대비 기통수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재규어 XJ-S까지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구입가는 싸더라도 유지관리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잠깐의 상상에 그쳤습니다
. 


자동변속기차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나 회사 일로 데모카인 제네시스 쿠페를 타보니 수동의 손맛이 상기되어서 웬만하면

수동변속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93년식 이전의 사브 900을 알아보았으나 괜찮은 차를 구하기 어렵더군요.  구입를 심각하게

고려한
91년식 컨버터블이 한 대 있었는데 기계적인 부분의 상태는 괜찮았으나 인테리어의 상태가 너무 좋지 못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  그러던 중 BMW E34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대부분의 매물이 525i 자동변속기였으나 간혹 수동변속기

차가 나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  그러던 중 craigslist 90년식 535i 수동변속기차 매물이 올라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이는 차의 상태도 괜찮았을뿐더러 차주가 성의 있게 차의 내역을 상세히 적었을 뿐만 아니라 첫 차주 때부터의

정비기록도 보관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   새 직장과 이사, 그리고 이미 하고 있던 원고 등으로 인해 곧바로

연락도 못해보고 팔렸겠거니 생각했습니다
.  그래도 혹시 모르겠다 싶어서 다음주까지 팔리지 않았으면 연락 달라는 메일만

띄워두었죠
.  그런데 일요일이 되자 아직 팔리지 않았다는 메일이 오더군요. 

그런데 그 다음날인 월요일에 한국 출장이 결정되고 수요일 비행기표를 끊어서 일주일간 모국출장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BMW 535i를 내놓은 차주에게는 이번 주에 차를 보고 싶었는데 출장관계로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출장

다녀와서도 안 팔렸으면 그때 가서 보고 싶다는 메일을 띄워두었습니다
.

우리나라에 머무는 동안
부모님께는 차를 새로 살 계획이라 말씀 드렸더니 이제는 좀 차 같은 차를 좀 탔으면 좋겠다

말씀을 하시더군요
.  저를 제외한 저희 가족들은
조용하고 편하며 남 보기에도 당당한 차를 선호하는 지극히 보통의

한국적인 자동차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제가 탄 95년식 랭글러나 74년식 수퍼비틀, 73년식 알파로메오 GTV,

77
년식과 69년식 비틀은 시끄럽고 좁고 불편해서 차답지 않았고 86년식 재규어는 XJ6는 잔고장도 잔고장이었지만 외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좁은 실내로 인해 부모님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


E34
수동변속기라면 부모님께서 미국에 오셨을 때 모시고 다니기에도 괜찮고 제가 일상용으로 타기에도 괜찮은 최고의

타협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3 31일 수요일, 다시 미국에 도착 후 전화를 해보았더니 아직도 안 팔렸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이거 혹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은 서로의 일정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날인 목요일 저녁에 차를 보기로 약속을 잡았죠
.


외관에서의 문제는 판매자가 적어둔 설명에 있었습니다.  이전 차주가 운전석 뒷펜더 부분을 긁어서 재도색을 했는데 그

부분이 갈라진 것과 몇 군데 문빵이 있다고 했습니다
.  그런데 실물로 보니 동반석 앞 도어에 조금 크게 찌그러진 곳이 두

군데 있었습니다
.  사진에서는 명확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눈에 좀 띄더군요. 

시운전을 해보았는데 예상보다 시프트 레버가 좀 헐겁게 느껴진 것과 윈드실드 윗부분의 몰딩이 좀 삐져나와 고속도로

주행에서 바람소리를 내는 점
, 스티어링에 살짝 유격이 있다는 점 등을 제외하고는 괜찮았습니다. 


시운전 후 구두로 딜을 마쳤습니다
.  다음날인 금요일에 또 한 사람이 차를 보러 오기로 되어있다고 하더군요. 

차가
100% 마음에 들었다면 계약금을 걸고 왔을 텐데 사실 완전히 흡족한 것은 아니어서 다음날 오는 사람에게 팔린다면

그건 내 차가 아니라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그 정도에서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그쪽에 팔고 제가 제시한 조건이 마음에 들면 토요일에 거래를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

 

금요일 회사에서 잠깐 쉬는 동안 또 craigslist를 검색하던 중 95년식 메르세데스 벤츠 W124 E320 왜건이 한대 매물로

나와있더군요
.  어코드 왜건을 잠시 타면서 왜건의 실용성이 주는 매력에 빠졌던 지라 이 매물에 꽤 관심이 갔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상태도 아주 훌륭해 보였고 가격도 블루북 개인거래가보다 한참 낮더군요
. 



마침 차가 있는 곳이 사무실 근처여서 퇴근하면서 들러서 차를 보았습니다.  사진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 정성 들여

관리하면서 탄 차라는 느낌이 오더군요
.  시운전을 해봤더니 기계적인 상태도 꽤 좋았습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자동변속기라는 점이었습니다
.   W124 수동변속기차는 미국에서 지극히 보기 힘든 레어 아이템일 뿐만 아니라

왜건 중에서는 본 적이 없었죠
. 

수동변속기였다면 어제 만난
BMW 535i 오너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고 당장 이 왜건을 구입했었을 겁니다. 

사실 자동변속기였음에도 그냥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꽤 들어서 한참 갈등을 했으나 그래도 비머쪽으로 아주 살짝 기운

상태라 한참 고민을 하다가 그냥 집에 왔습니다
.  그런데 저녁 9가 되기 조금 전에 BMW 오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날 차를 보러 온 사람이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 그 사람에게 차를 팔기로 했다더군요
. 

젠장, 아까 그 왜건 살 걸…’ 하는 생각이 확 밀려들었습니다.  그 상태에 그 가격이라면 제가 본 이후에 그 차를 보러 온

사람에게 벌써 팔렸을 가능성이 높았거든요
.  사실 광고 나간 후 제일 먼저 그 차를 보러 온 게 저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기회는 제게 있었으나 제가 잡지 못했던 거죠.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에 보니 craigslist의 그 차 설명 앞에

SOLD
라고 되어있더군요. 그래서 다시 craigslist를 비롯해
www.motors.ebay.com  www.autotrader.com

www.cars.com  www.recycler.com
등을 돌아다니며 매물을 검색해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차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craigslist에서 검색범위를 로스엔젤레스와 오렌지카운티뿐만 아니라 샌디에고로 넓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1994 BMW 530i V8 5speed one owner 라는 포스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동차 저널리스트라 해도 모든

차종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  이차가 그랬었어? 하는 놀라움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E34 530

그랬습니다
.  제목에 V8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저는 530도 실키 식스인줄 알았었거든요. 

사실 제목을 보고는
혹시 540을 잘못 쓴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 대박인데…’ 하는 생각을 했죠. 

검색을 해보니 M30B35엔진을 탑재한 535를 대체한 530이 정말 V8 M60B30을 얹고 있더군요.  8기통으로는 상당히 작은

배기량이어서 흔치 않은 경우였고 이 차 말고는 페라리
308과 트라이엄프 스택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  그러자 또 곧바로 전화가 오더군요.  그래서 또 곧바로 차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가면서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E34 530i를 보러 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친구도
530이면 6기통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36 M3를 타는 후배에게도 전화를 했었는데 그 역시

E34 530
이면 6기통일 것으로 알고 있더군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장거리 운전을 해서 내려가 해가 지기 전에 차를 볼 수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외관상태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나빴습니다만 휠과 오디오가 모두 순정품 그대로였다는 점과 차체 패널이

모두 오리지널이라는 점
, 실내 보존상태가 좋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습니다. 

감점요인이라면 아이들이 약간 불안정했고 스티어링의 직결감도 사알짝 느슨했던데다 고속주행에서 미세한 진동이

있었는데 휠밸런스인지 아니면 프로펠러 샤프트인지 분명치 않았다는 점
, 고속주행시 대시보드 부근에서 달그락소리가

난다는 점
, 그리고 틴팅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 등을 비롯해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중고차를 살 때 100% 마음에 들고 가격도 착한 차를 만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 차도 약간의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차였고 제시한 가격도 블루북에서 개인직거래의
Good 에 해당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더 기다리다 보면 다른 좋은 매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지난 한달 넘는 기간 동안 계속 검색해봤어도 괜찮은

차 찾지 못했고 수동
530i에 이정도 상태의 차는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이 교차하면서 갈등을 좀 하다가

흥정을 하여 가격을 조금 깎아서 구입을 했습니다
.



그리고 보니 이 차가 지금까지 제가 샀던 차 중에 95년도에 신차로 샀던 랭글러를 제외하면 가장 최근 연식의 차네요.


추후 계획이라면 이 차를 잘 손질해가면서 타고 비틀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손볼 생각입니다
. 

그리고 좀 더 장기적으로는 제네시스 쿠페를 사서 업무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데모카 겸 트랙용 차로 꾸며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나중에 제네시스 쿠페를 살 때 떠나 보낼 차가 비틀이 될지 비머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로또가 터진다면 둘 다 유지하고 다른 차도 더 사겠지만 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요. 

아직까지 로또를 산 적이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