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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딩이의 자동차 이야기
로터스 에보라 시승기 3편 본문
시동은 스타트 버튼이 아니라 키를 돌려서 겁니다.
이제는 버튼식이 많아지자 오히려 키를 돌리는 것이 더 스포티하게 느껴지네요.
엔진은 7천 rpm까지 부드럽게 올라갑니다. 토크감도 충분하며 반응성도 우수하죠. 스포츠 모드 버튼을 누르면
드로틀 반응이 더욱 예리해집니다. 주행중에 스포츠모드 버튼을 누르면 그 후 가속페달을 완전히 놓아 TPS값이
0이 된 이후에 작동하기 시작하고 이는 해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설정은 가속페달을 반쯤 밟은 상태에서
갑자기 반응성이 바뀌면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하는 배려라고 하지요.
시내주행이라면 스포츠모드가 신경질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브레이크 페달도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가감속의
페달반응이 비슷한 쪽으로 익숙해진다면 오히려 스포츠 모드를 일상적으로 켜고 다니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브레이크가 정말 발만 올려놓으면 막 서려고 하는 정도거든요.
6단 수동변속기는 도요타의 유럽형 모델인 아벤시스에서 가져온 아이신 EA60입니다. 원래는 디젤 엔진과 조합되는
트랜스액슬인데 이를 바탕으로 에보라의 특성에 맞도록 기어비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3단부터 기어비를 조금 더
짧게 설정한 스포츠 레시오 기어박스도 옵션으로 준비되어 있죠.
이번 이벤트에 동원된 시승차는 모두 스포츠 레이쇼 기어박스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 기어비도 그리 짧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스탠다드 레이쇼 기어박스라면 이보다 더 길게 잡혀있다는 이야기일텐데…
300 마력이라는 출력도 최근에는 승용차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흔해진 데 반해 에보라의 출력은 숫자로만
보기에는 그닥 스포츠카답지 않은 276마력임에도 불구하고 체감 동력성능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로터스의 전통인 가벼운 차체가 주는 선물이죠. 물론 핸들링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가벼운 몸무게를 활용해 핸들링이 높은 차를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벼우면서
승차감까지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죠. 로터스의 엔지니어 맷 베커Matt Becker씨는 에보라의
핸들링과 승차감을 아주 높은 수준에서 훌륭하게 양립시켰습니다.
웬만한 장거리 여행을 해도 차 때문에 지쳐 나가떨어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겠더군요.
물론 스포츠카다운 하드함은느껴지지만 얇은 쿠션의 시트로도 충분히 안락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노면충격을
완화하는 동시에 주행안정성도 우수합니다. 스티어링의 반응도 샤프하고 피드백도 정말 명쾌합니다.
동시에 만족시키지 어려운 다양한 요소들을 액티브 서스펜션이나 마그네틱 라이드 같은 전자장비를 갖추지 않고도
골고루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은 로터스의 섀시 기술력이 얼마나 높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턴인부터 코너 탈출까지 정직하고 빠르게 반응하면서 피드백도 끝내주는 파워 스티어링, 좌우 연속 코너의
변환점에서의 깔끔한 추스림, 혹사시켜도 성능이 유지되는 강력한 브레이크, 충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뽑아 쓸 수
있는 동력성능 등으로 아주 빠르고 경쾌하게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릴 수 있었거든요.
완만하게 굽어진 고속코너든 바짝 감기는 헤어핀이든 구분 없이 너무나도 쉽게 처리해버리는 차의 능력 때문에
갑자기 운전실력이 몇 단계는 격상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듭니다.
와인딩 로드에서 에보라를 모는 즐거움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Top Gear 시즌 2에서 Bowler Wildcat을 몰던 리처드 해몬드가 “I am a driving God!!” 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죠.
로터스 에보라를 타면서 저 멘트에 정말 무지무지하게 공감이 갔습니다. 갑자기 전지전능까지는 아니라 해도 정말
대단한 드라이버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차의 움직임이 수족부리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 분위기에 빠져 점점 속도를 올려나갔습니다. 웬만한 시승이라면 과속으로 적발되는 것이 두려워 제한속도를
크게 넘기지는 않으나 이번 이벤트에서는 그 부분을 완전히 운에 맡기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테스트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죠. 멀리서 다가온 풍경이 차 옆을 빠르게 스쳐지나갔고 실제 계기판에 표시된 속도도 도로조건에 비해
상당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 했습니다. 몸에 걸리는 횡가속도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어가 소리를 내지 않고 사뿐히 코너를 감아나가는 것으로 보면 아직 여유가 충분하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어느 정도를 넘어서자 차내 분위기가 여전히 평온함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부담감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지금까지 다른 차로 제가 몰아붙여 보았던 영역을 상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아무 투정
없이 계속 받아주고 있었거든요. 더 나가다가는 분명히 차의 한계에 훨씬 못 미쳐 제 운전실력의 한계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고속 코너링 도중 노면 기복이 꽤 심한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반사적으로 항문이 조여지며 손에 힘이 들어가더군요. 앞뒤가 가벼운 미드 엔진의 특성상 요Yaw관성이 적은데다
빠르게 코너를 돌던 중 그런 요철을 만난다면 의도한 라인에서 조금이나마 밀려날 것으로 생각을 해서 약간
긴장하면서 대비를 했는데 의외로 차는 별 일 없었다는 듯이 원래의 라인을 그대로 유지하며 싱겁게 처리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차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높아져 계속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코스를 공략했습니다.
차의 성능으로 보면 속도를 더 올릴 여유가 있음이 분명했지만 그 이상으로 몰아붙일 이유도 필요성도 없었습니다.
시승이나 드라이빙을 위해 가끔씩 와본 도로이기는 해도 익숙한 코스는 아니었기 때문에 출구 가까이서 한번 더
감기는 코너를 미리 인지하지 못하고 진입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코너 입구만 보고 가늠한 스피드로 뛰어들었다가 반경이 조여드는 상황이 닥쳐도 스티어링을 조금만 더 감아주면
조향특성의 변화 없이 그대로 안으로 더 파고듭니다.
차가 운전을 다 받아준다는 즐거움과 함께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해보기는 너무 부담된다는 두려움이 뒤섞인
묘한 기분이 되더군요. 속도를 더 올려도 충분할 것은 분명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어차피 이 차로 제 한계를 시험해보려면 트랙에 가야 한다는 것은 자명했으니까요.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차들이 있고 스포츠카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하지만 에보라만큼의 핸들링을 가진
차는 그리 흔치 않죠. 그것도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아닌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할만합니다.
성능에 있어서 로터스 에보라가 세계 1류 급이라는 것은 확실하지요.
그럼 가격은 어떨까요? 미국 시장에서 에보라 2+0의 가격은 $72,990, 그리고 2+2는 $73,500에서 시작됩니다.
보험료를 감안한다면 2+2를 고르는 것이 낫겠죠. 물론 이는 포르쉐 케이먼 S의 베이스가격인 $61,500보다 1만2천
달러나 높은 가격입니다. 거기에 옵션까지 어느 정도 집어넣고 나면 포르쉐 911의 기본모델인 카레라의 $77,800
보다도 높은 가격을 형성하게 됩니다. 스포츠 패키지 $1,275 (스포츠모드 전환기능, 티타늄 테일파이프, 크로스드릴
브레이크 로터, 블랙 캘리퍼), 프리미엄 패키지 $1,990 (풀 가죽 인테리어, 액센트 라이팅, 암레스트), 테크놀로지
패키지 $2,995 (7인치 터치 스크린 내비게이션, 오디오 업그레이드, 블루투스, 크루즈 컨트롤, 리어 파킹 센서),
알파인 다이나믹 이퀄라이저 $695, 후방 카메라 $495, 전동 접이식 미러 $450, 스포츠 레시오 기어박스 $1,500 등이며
휠, 페인트도 옵션이 있습니다. 시승 이벤트에 동원된 차들은 적용된 옵션으로 볼 때 8만 달러를 상회하는 가격대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터스 에보라와 포르쉐의 비교에서 포르쉐를 고르겠지요.
하지만 로터스 팬이라면 브랜드 명성에 어울리는 성능에 기본적인 실용성까지 갖춘 에보라가 아주 매력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스나 엑시지가 좋기는 해도 불편하고 매일 타기 힘든 차여서 포기했다면 반드시 에보라를
시승해보세요. 엘리스와 엑시지가 세컨드카로밖에 쓸 수 없는 차였다면 에보라는 퍼스트카로도 사용이 ‘가능’
하거든요. 분명히 퓨어 스포츠카이면서도 GT적인 요소까지 갖추고 있는 차가 바로 로터스 에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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